추천음반/추천음반(팝 포크)

Amy Grant

아르페지오 오디오샵 2010. 9. 27. 01:54

Amy Grant

 

 

 

10년이 넘는 음악생활 동안 쌓아온 팝화된 기독교음악 이른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계의 명성을 팝 음악계에서도 화려하게 이어가고 있는 에이미 그랜트(Amy Grant)는 미모만큼이나 화려한 그리고 신앙심이 깊은 가수생활을 하고 있는 가수다.

종교음악의 경건함에서 오는 약간의 딱딱한 분위기를 다양한 장르의 리듬에 찬양조의 가사를 덧붙여서 크리스천 음악의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미국 내시빌에서 소시 적부터 활동을 시작한 에이미 그랜트는 14세 때부터 곡을 만들기 시작하여 17살에 데뷔앨범을 발매, 이듬해인 1979년 2집 앨범 < My Fathers Eyes >의 타이틀곡으로 그래미상 가스펠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정작 화려한 비상의 날개를 펼치게 만들어준 앨범은 1982년에 발매한 < Age To Age >로 이 작품으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가스펠 음악상인 도브(Dove)상을 3개 부문에 걸쳐 수상했고 그래미상 또한 거머쥐었다. 당시 빌보드지는 이 앨범을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가스펠 앨범’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후로 내놓는 앨범마다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1983년, 1984년, 1985년, 그리고 1988년 4번에 걸쳐 그래미상 가스펠 부문 최우수 여자 가수상을 석권하는 등 가스펠(Gospel) 분야의 최고의 여가수로 올라서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1984년에 발매된 앨범 < Straight Ahead >부터는 ‘크로스오버’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데 그 시발점은 팝 차트의 진입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원칙을 고수하는 크리스천들에게도 이 앨범이 호응을 얻어 외면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1986년 앨범 < Unguarded >은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등에 업고 날카로움을 더하여 다시 한번 이미지를 확실히 변화시켰다. 명성과 함께 논란도 계속되었지만 기세는 꺾이질 않아, 결국 수록곡 중에서 ‘Wise up(29위)’과 ‘Find a way(66위)’ 등 두 곡이 팝 싱글차트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고 TV 드라마에까지 삽입되어 쓰이기도 했다. 같은 해 크리스천 히트곡들을 모아놓은 < The Collection >을 발표, 그녀의 가스펠 음악사를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고, 결정적으론 막 그룹 시카고(Chicago)를 탈퇴한 피터 세테라(Peter Cetera)와 같이 부른 ‘The next time I fall’으로 싱글차트 정상에 올라 팝 팬들에게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1988년 발표한 앨범 < Lean Me on >은 이제 장르의 구분 없이 많은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되었음을 알려주었고, 그녀를 팝 계의 톱 스타 반열에 올려준 앨범 < Heart In Motion >은 1991년에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그녀의 앨범 중 최고의 상업적인 성공을 창출, 현재까지 5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와 5곡의 히트 싱글 등 각종 기록의 산실이 되었다. 다섯 짜리 자신의 딸 밀러(Millie)에게 바친 곡으로 차트 정상을 밟은 첫 싱글 ‘Baby baby’(1위)에 이어 경쾌한 리듬이 흥겨움을 점점 고조시키는 Every heartbeat(2위), 펑키 리듬의 재미있는 곡 ‘Good for me’(8위), 중량감이 느껴지는 발라드 ‘That’s what love is for’(8위), 로맨틱한 발라드 ‘I will remember you’(차트 20위) 등 인기차트를 난타(亂打)했다. 이전보다 더욱 자유스럽고 열정적인 이 앨범은 가스펠 풍의 노랫말에 강력한 댄스리듬과 록 비트를 과감하게 도용한 파격적 패턴의 음악을 선보인 것이 주목을 받게 된 점에서 많은 점수를 얻었고,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가스펠 부문이 아닌 팝 부문의 그래미상 주요 4개 부문의 후보로 선정되었다. 또 한번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앨범 < Home For Christmas >은 < Heart In Motion >의 후광을 업고서 팝 차트 2위까지 오르며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94년 자신의 삶의 반영이라고 언급한 앨범 < House Of Love >을 내놓았는데 컨트리 스타 빈스 길(Vince Gill)과 함께 한 타이틀곡과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원 곡을 리메이크한 ‘Big yellow taxi’ 등을 싱글로 발매하였지만 팬들의 반응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에 들고 나온 새 앨범 < Behind The Eyes > 역시 기타 연주까지 직접 도맡는 열의를 보였지만 상업적 인기 추락을 면치 못했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울하고 어두웠던 것은 당시 그녀의 감정적인 혼란을 나타내고 있는데, 실제로 앨범 발매직후에 16년 동안 이어온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로 새 앨범 발표는 소문만 무성한 채 5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그녀가 2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서 이룩해 놓은 ‘크리스천 뮤직의 대중화’라는 업적은 소홀히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컨트리를 비롯하여 가스펠, 댄스, 로큰롤 등을 혼합한 친숙한 멜로디에 종교적인 내용의 가사를 실어 전파함으로 크리스천 팬들을 붙잡아 두는 한편 팝 팬들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l Shaddai - Amy Grant

 

 

 

 

 

Video: 

El Shaddai (Korean Version) by 사랑이야기

 

El Shaddai

 

El shaddai, el shaddai,
El-elyon na adonia,
Age to age youre still the same,
By the power of the name.
El shaddai, el shaddai,
Erkamka na adonai,
We will praise and lift you high,
El shaddai.

Through your love and through the ram,
You saved the son of abraham;
Through the power of your hand,
Turned the sea into dry land.
To the outcast on her knees,
You were the God who really sees,
And by your might,
You set your children free.

El shaddai, el shaddai,
El-elyon na adonia,
Age to age youre still the same,
By the power of the name.
El shaddai, el shaddai,
Erkamka na adonai,
We will praise and lift you high,
El shaddai.

Through the years youve made it clear,
That the time of christ was near,
Though the people couldnt see
What messiah ought to be.
Though your word contained the plan,
They just could not understand
Your most awesome work was done
Through the frailty of your son.

El shaddai, el shaddai,
El-elyon na adonai,
Age to age youre still the same,
By the power of the name.
El shaddai, el shaddai,
Erkamka na adonai,
I will praise yo till I die,
El shaddai.

El shaddai, el shaddai,
El-elyon na adonai,
Age to age youre still the same,
By the power of the name.
El shaddai, el shaddai,
Erkamka na adonai,
I will praise you till I die.
El shaddai.

 

 

음반리뷰

 

Legacy...Hymn & Faith (2002 /EMI Sparrow) ★★★

 

 

01. This Is My Father's World
02. My Jesus I Love Thee
03. Softly And Tenderly
04. I Need Thee Every Hour / Nothing But The Blood - (with Vince Gill)
05. What You Already Own
06. It Is Well With My Soul / River's Gonna Keep on Rollin', The
07. Do You Remember The Time
08. Fields Of Plenty / Be Still My Soul
09. Imagine / Sing The Wondrous Love Of Jesus
10. Come Thou Fount Of Every Blessing
11. Fairest Lord Jesus
12. Holy, Holy, Holy
13.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 Old Rugged Cross, The / How Great Thou Art
14. Marching To Zion

 

<90년대 말, 크리스찬 팝 무브먼트의 대표적 뮤지션으로 팝적 센서빌리티에 참신하고 새로운 보이스로 전세계 컨템포러리 크리스챤 뮤직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몰고왔던 에이미 그랜트의 재발매작. 당시 레코딩 아티스트로서 데뷔 25주년을 기념하여 발매된 앨범으로 빈스 길, 앨리슨 크라우스 등 컨트리 뮤직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 하였으며, 종교성 짙은 트래디셔널한 넘버들을 불러 화제를 몰고왔던 작품이기도 하다.>

 

<AMY GRANT - LEGACY - HYMNS & FAITH

CCM과 팝의 경계에 연연하지 않고 세속적인 사랑과 신에 대한 존경을 함께 노래했던 자유로운 음악인 AMY GRANT의 2002년 신작. 이 앨범에서 그녀는 구전 송가와 트레디셔널 가스펠을,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 컨트리 스타 Vince Gill의 도움을 받아 훌륭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캐치하고 팝적인 처리가 돋보이는 구전 가요 `THIS IS MY FATHER`S WORLD`를 비롯,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맞춘 아카펠라 송 `FIELDS OF PLENTY`, `BE STILL MY SOUL`등, 청아하고 영적인 그녀의 음성을 접할 수 있다.>

 

 

CCM이란 무엇인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와 같이 현대적인 (동시대의,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혹은 기독교 음악)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가스펠 음악이 대략 세가지로 구분되던 시기였다.

그 첫째가 성스러운 가스펠(Sacred Gospel), 둘째로 Inspirational, 세째로 contemporary Gospel이었다. Sacred Gospel은 교회에서 불리우던 음악이었고 Inspirational은 오늘날의 이지리스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컨템퍼러리로 분류된 것은 그 당시 남부 가스펠에서 가장 흔했던 4중창단의 노래를 지칭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남성 4중창 스타일이 가장 유행하던 대중적 가스펠이었기 때문에 컨템퍼러리로 구분되어진 것은 남부 가스펠이었다. 이때부터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뮤직이라는 말은 동시대적인, 대중적인 기독교음악이란 의미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C.C.M.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음악은 각 나라와 지역의 특성과 그 문화의 특성에 따라 만들어지고 불리워 왔다. 또, 지역마다 고유의 악기를 사용해서 그 음악을 연주해 왔다. 그래서 그 내용은 같으나 그 스타일은 독특한 형태로 발전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전자악기가 출현하고 그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전세계에 일반화됨에 따라 이제는 음악과 사운드의 예술적, 기술적 차이와 한계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교회안에서 머물러 왔던 크리스쳔 음악도 새로운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물론 새옷을 입은 크리스쳔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전통적인 교회음악이 오늘날의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음악(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편의상 CCM으로 부름)으로 변화된 첫번째 시도는 1964년 미국의 레이랩(Ray Repp)이라는 사람이 카톨릭 교회에 포크(Folk)미사를 선보인 것이었다.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하고 웅장한 미사곡만을 연상하던 사람들에게 포크음악 미사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듬해인 1965년 랄프 카마이클은 빌리그래함 목사의 선교영화 (The Restless ones; 쉼이 없는 사람들)에 음악을 삽입하면서 싱코페이션(박자의 강약을 바꾸거나 전환하는 것)이 가미된 음악을 사용했다. 전통적인 교회음악에서 사용치 않던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같은 해 유명한 팝아티스트인 배리 맥가이어(Barry McGuire)가 록 음악계의 반항적 물결을 떠나는 신호처럼 <Eve of Destruction,파멸의 전야>라는 앨범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팝 음악 스타일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다.

1967년 미국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그 운동이 정점에 달했다.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젊은세대들 간에 반항의 물결이 크게 일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내의 젊은이들은 그만큼 과격하진 않았다. 그즈음 랄프 카마이클과 커트카이저는 '가서 그대로 전하라'(Tell it Like it is, Natural High) 같은 청소년 뮤지칼로 크리스쳔 음악을 거칠게나마 현대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반전운동과 함께 일어난 미국의 반문화운동은 자유와 평화의 상징, 마약(LSD), 자유연애, 그리고 록큰롤을 성스러운 것으로 삼았는데, 이 운동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피크를 이루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미국 우드스탁 근교에서 열린 대규모 록 페스티벌, 기성세대에 반기를 든 젊은이들 50여만명이 조화, 평화, 사랑을 외치며 이 록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미국 히피들의 사상이 대변된 이 페스티벌은 Rock Music의 하나의 전설처럼, 이상적인 Rock 페스티벌로 얘기되었으나, 몇 개월 뒤에 다른 곳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서는 그같은 모토는 사라지고 폭력과 혼란이 난무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러한 히피운동에 반대하는 대항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문화 히피운동이 내세운 자유와 사랑에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의 진정한 자기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환멸에 빠진 세대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참 평안을 발견했다. 참된 존재가치를 발견한 젊은이들은 그들 세대가 가진 문화의 언어로 새로운 스타일의 기독교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9년 래리노먼(Larry Norman)이라는 젊은 아티스트가 캐피탈 레코오드에서 <Upon this Rock>이라는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정통 Rock음악에 신앙의 내용을 실은 것이었다. Larry Norman의 앨범은 크리스쳔록의 선구적 신호탄과 같았다.
 이 해에 첫 CCM 앨범이라 할 수 있는 마일런 르페브르와 홀리스모크의 <Mylon>, 래리노먼의 <Upon this Rock>, 존 피셔의 <The Cold Cathedral>이 나왔다.

캘리포니아에 새로이 세워진 갈보리교회에서는 태평양연안에서, 회심한 히피들을 위한 대규모침례식을 거행했다. 갈보리는 크리스쳔 음악이란, 음악이 갖고있는 소리나 외양보다는 그 마음의 조건과 더 관련이 있음을 일찍부터 깨달은 교회였다. 갈보리교회의 척스미스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해 그 스타일이 어떻든지 주님을 위한 음악을 만들도록 했다. 그러한 음악들은 당시의 교회음악과는 판이했으나 그러한 음악은 젊은 크리스쳔들의 진정한 마음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갈보리교회에서 만들어낸 음악도 새로운 크리스쳔 문화의 한 부분을 형성해 나갔다. 이렇게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새로운 물결은 미국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 물결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일어나게 된 '예수운동(Jesus Movement)'과 중첩되어서 일반매체인 'Time'등을 포함한 수 많은 매체가 이 운동을 다루게 될 만큼 확산되었다.

한편 초창기 CCM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이 아주 열악하게나마 나오기 시작했다. 음악적, 기술적 수준도 낮은데다 제작비용면에서도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초창기 CCM은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비록 음악적 수준은 낮았지만 그 순수성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돋보인 시기이기도 했다.
1970년도에 들어오면서 1971년 갈보리교회에서는 'Maranatha! Music'이라는 음악선교단체를 설립해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Children of the day, Blessed Hope, Gentle, Country Faith, The Way, Selah, Love song 등의 그룹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1972년 여름, CCM은 달라스의 미식축구경기장인 카튼보울에서 열린 '엑스폴로 72'대회에서 활동영역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래리노먼, 러브송, 리타쿨리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배리 맥가이어, 안드레 크라우치 등이 출연해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 앞에서 복음이 담긴 새로운 기독교음악을 선보이게 되었다. 또 Word레코드사는 크리스쳔 전문 레이블인 Myrrh를 설립, 초창기 크리스쳔음악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가 진행되면서 CCM은 기성 교회의 거부감과 라디오에서 거의 방송되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해 나갔다.
1976년에는 CCM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된 Sparrow사가 설립되었다. Word 레코드에서 아티스트와 선곡담당자로 일해오던 빌리 레이 헌은 작지만 선교적 성격이 강한 레코드 레이블을 세워 배리 맥가이어, 애니 허링, 존 마이클 탈보트, 케이쓰 그린 등의 앨범을 출반했다. 계속해 CCM은 그 질과 양에 있어 성장해갔고, 1978년 CCM계에는 큰 영향을 준 두가지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하나는 CCM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CCM'이 창간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초대형 가수 Amy Grant의 등장이었다. 'CCM'지는 처음에는 크리스쳔음악계의 종사자들을 위해 제작되었으나 점차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보급이 되었고, CCM의 챠트도 집계하는 등 명실상부한 CCM잡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79년에는 포크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밥딜런이 'Slow Train Coming'이라는 앨범을 내고 기독인이 되어 공연 때마다 거듭난 내용을 주로하는 노래만을 불러 세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 1979년에는 크리스쳔 Rock을 비판해오던 Bob Lason이 그 태도를 바꾸게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세속 Rock음악에서 보았던 위험성이 크리스쳔 Rock에서도 존재할 위험이 있다고 해서 크리스쳔 Rock을 반대해 왔으나 CCM을 자세히 접하고 CCM아티스트들의 확고한 믿음과 그들의 삶을 보면서부터 종전의 비방하던 관점을 바꾸어 오히려 옹호하는 입장으로 달라지게 되었다.

1980년 No Compromise! 라고 뜨겁게 외치며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렬한 선교에의 도전을 불러일으키던 Keith Green은 자신의 새 앨범을 자유가격제로 판매함을 발표, 충격을 주었다. 그는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대로 자신의 앨범을 판매했다. 이같은 판매방식은 돈이 없어도 그의 음악을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1981년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뮤직은 양적으로도 성장해서 일반 레코드사에서도 크리스쳔 뮤직을 보급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었다. 그래서 크리스쳔 음악이 일반 시장에도 배급됨에 따라 일반시장에도 적합한 노래를 만드는 경향이 생겨나서 음악영역의 전환에 따르는 문제가 발생해 이른바 '크로스오버'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82년엔 CCM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백워드 매스킹에 대한 논쟁이 크리스쳔 음악계를 들끓게 했다. 레코드를 거꾸로 돌려보면 거기에 사탄의 메세지가 들어있다는 '백워드 매스킹' 문제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어 레코드를 호기심으로 거꾸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또 1982년 CCM계에 시대의 예언자로 불리우던 케이쓰 그린(Keith Green)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케이쓰 그린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대의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였고,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였다. 그의 부인인 멜러디 그린은 그가 설립했던 '라스트 데이 미니스토리'를 더욱 확장시켜 수많은 선교사역자들을 길러냈다.

1985년 워드레코드는 일반 팝회사인 A & M사와 계약. Amy Grant의 앨범을 일반시장에 보급했다. 그녀의 앨범 'Unguarded'가 85년 5월에 나오고 그 앨범에 수록된 'Find a way'가 빌보드 Top 40에 진입하고 크리스쳔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일반 pop챠트에 등장하게 되자 다시 크로스오버 논쟁이 일기도 했다. 세상과 타협했다는 비판 즉 세속적 성공을 위해 영적인 내용을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비판이 가해지고, 한편 에미 그랜트의 옹호자들은 에미 그랜트야말로 오랫동안 CCM 아티스트들이 꿈꾸어왔던 일, 즉 일반팝 음악계에 크리스쳔음악을 통해 진리를 전파함으로서 진정으로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1986년 에미 그랜트의 'Unguarded는 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가 플래티넘 앨범을 수상했고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시기엔 Amy Grant뿐 아니라 80년대를 이끌어가는 아티스트들이 성장해갔고 1979년 첫 앨범을 낸 이래 스탠다드한 노래로 사랑을 받게 된 샌디 패티도 대형가수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들 외에도 마이클 W.스미스, 마이클 카드, 트와일라 파리스, 존 마이클 탈보트, 스티브 그린, 랜디 스톤힐, 데이빗 미스, 카 맨, 돈 프란시스코, 필 케이기, 웨인 왓슨, 뉴 송, 챨리 피콕 등이 CCM계의 선두주자로 일하고 있었고 다니엘 아모스 밴드, 레즈 밴드, 페트라, 화이트 하트, T T S, 러스 태프 등도 크리스쳔 록을 성장시켜 나갔다. 스트라이퍼가 헤비메탈을 들고 크리스쳔음악을 시도하고 화이트 크로스, 샤우트 등 크리스쳔 메탈도 태동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CCM은 일반 pop의 흐름과 거의 대등한 흐름을 이어갔다. 80년대 중반 스티븐 테일러가 뉴웨이브 스타일의 크리스쳔 뮤직을 선보인 이래로 CCM은 갖가지 다양한 쟝르의 음악 스타일을 원용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쳔 록, 크리스쳔 랩, 포크, 재즈, 에어로빅음악, 묵상을 위한 연주음악 등등 이젠 그 종류가 다양해져 분류조차 어렵게 되었다.

한편 마라나타 뮤직이 성장시켜온 컨템퍼러리한 찬양 등은 호산나 인테그리티뮤직의 프레이즈 앤 워쉽 시리즈로 더욱 그 영역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으며 비니어드 교회의 워쉽송도 컨템퍼러리 프레이즈 앤 워쉽 분야를 살찌웠다. 또 85년에는 CCM에서도 CD를 제작하기 시작해 음질면에서도 일반음악과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또 일반 pop음악에 뮤직비디오(MTV)가 크게 성장하면서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크리스쳔 MTV가 등장했다. 1986년에는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뮤직이 대학에서 정식으로 가르쳐지게 되었다. 세인트루이스 근처의 그린빌 칼리지는 CCM을 정규학과로 세워서 그 커리큘럼에 CCM의 여러 분야 - 스튜디오 레코딩 테크닉, pop이론과 작곡코스, 실기코스, 무대효과, 프로그래밍, 프로모션, 업계활동 등을 포함시켰다. CCM의 역사가 30년을 넘어 이제 장년기에 접어드는 1990년대는 CCM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대가 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크리스쳔 뮤직 비디오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었으며 그런 뮤직 비디오가 방송될 수 있는 CCM전문 TV가 생겨났다. CCM의 수준은 외적인 면에서 볼 때 이제 일반 팝음악계의 수준에 완전히 도달했으며 그 내용면에 있어서는 악마주의, 쾌락주의로 얼룩져 있는 일반 pop음악의 대안으로 복잡한 현대 문화 속에서 효과적으로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CCM은 유럽에도 들려지기 시작해 에미 그란트, 샌디 패티, 화이트 하트, 페트라 등은 유럽의 공연에서 성공적 결과를 낳기도 했고, 80년대 말부터 자유화의 물결이 일던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도 CCM은 들어가게 되었다. 1989년 8월 발트해 공화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탈린에서 열린 에스토니아 89는 수많은 결신자를 배출했다. 소련의 공산화 이래 처음으로 열린 CCM공연이었다. 1991년에는 유럽 각국의 크리스쳔 아티스트들이 스위스에 모여 유럽의 CCM을 모은 앨범 '첫 발자욱'을 냈다. 이들은 유럽 특유의 크리스쳔 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럽에서의 CCM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결의했다. 한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도 CCM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CCM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음악이, 아시아 각국의 찬양문화가 발전하면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개방화되는 세계의 추세에 따라 나라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CCM은 더욱 확산될 수 있었다. 1990년대는 CCM이 본격적으로 일반 팝음악계로 뛰어드는 시기가 되었다. 내용이 완전8?선교적입장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CCM의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에미 그랜트가 1991년 팝계의 정상을 차지했다. 이어서 가장 뛰어난 CCM 사역자중의 한명인 마이클 W.스미스가 'Place in this world'라는 확실한 복음메세지가 담긴 노래로 빌보드 상위로 진입하게 되었다. 'Be Be and Ce Ce Winans'는 리듬 앤 블루스 챠트 1위를 기록했다. Take 6도 그래미상에서 여러 부문을 수상하는 등 CCM은 일반 팝계에서도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크리스쳔 음악인들이 품어왔던 "일반 pop음악계에서의 복음사역을!" 이라는 슬로건이 실현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마지막 때에 CCM이 일반 문화속에 파고 들어가 선보다 악이 더욱 많은 일반음악계를 바꾸고 순화시키고, 궁극적 목표인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해 수많은 영혼을 구하게 될른지 아니면 CCM이 일반 pop음악이 추구하는 인기와 상업주의에 물들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것인지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될 CCM의 사역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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